*김어준에 대한 신화적 음모론과 오마주의 일환으로 그의 깐죽 대화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그래도 닥치고 읽어주세요.!!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란 책 제목이 떠올라 이리

 

써봤습니다. 이런식으로 곳곳에 김어준을 떠올리며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오해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상당히 지적이고 예의바른 화법을 지향하는 지식인이란걸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자! 오늘의 인물 김어준은 누구인가?

 

 

 

ㅋㅋ 김어준씨가 멋지게 나온 사진은 무조건 패스해주는게 그를 닮아가는 김어준 팬이겠죠

 

제가 이리 삐딱한 사람이 아닌데 다 김어준 뉴스공장을 많이 듣다보니 영향을 받은것 같습니다.

 

특히 김어준씨가 맘에 안들 사진을 고르느라 고민했네요. 불친절한 A/s!

 

 

 

1. 김어준이 난 인간인 이유 하나! (외모)

 

일단 김어준하면 참! 이사람이 똑똑한게 체게바라하면 그에 대한 정확한 삶의 정보는 몰라도 그 사람의 외모는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않게 떠올리게 되고, 그의 얼굴 디자인이 하나의 혁명, 개혁의 아이콘이 되고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이되듯이, 김어준 역시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이 한 스타일(긴 파마머리, 정리안한듯한 덥수룩한 수염, 본인은

 

아니라 주장하지만 실로 그의 생각의 크기 만큼 방대한 머리크기, 좋은 말 하나 보태자면 뚱뚱하지만 옷발 잡아주는 큰 키)을

 

고수하면서 그의 외모를 하나의 개인 브랜드, 더 나아가서는 어떤 유쾌하고 자유 분방한 언론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허! 생각할수록 이사람 대중의 코드를 아는 난사람일세!

 

2. 김어준이 난 인간인 이유 둘! (트랜드를 앞서가는 직감)

 

인터넷 초기 시절, 괜히 아무생각없이 또는 운좋게 딴지일보라는 개인 홈피를 영향력있는 언론 사이트로 키웠던 인물이

 

아니라는 거지요!

 

지금 현재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짧은 시간에 전체 라디오 청취율에서 2위를 만들어 놓았으니 대중의 NEEDS를 정확히

 

읽어내는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자가 아닌 저로선 김어준을 대중이 더 좋아하게 하려면 이렇게 띄워주는 수밖엔 없습니다. ㅋ ㅋ)

 

 

*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김어준이란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간략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삼수 끝에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에 진학, 졸업하였음.

 

훗날 삼수로도 서울대 못 간것이 다행이라고 밝힘.

 

 대학생활 중 배낭여행을 엄청 많이 오래 다님, 거의 50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했다고 함.

 

아라파트 만나려고 집까지 찾아갔다가 돌아 온 일화가 있음, 그의 엉뚱함 속에 자유분방한 가치가 보이네요.

 

졸업 후 포스코에 입사, 하지만 8개월 만에 박차고 나옴. ( 튀어서 짤린게 아니고? ) 

 

그의 말을 개인적으로 요약하면 회사라는 조직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미래 모습이 비참하다 못해 무서웠다고함.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하다가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로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딴지일보가 몰락하자 (2000년대 중반) 김어준도 힘든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전 부인과의 이혼도 이때,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그 답게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면서, 한겨레 신문에서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였고,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자주 초청되었다.

2011년 이후 나는 꼼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민적으로 폭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의 한 코너에 출연해서 나가수의 열풍에 힘입어 크게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 3월14일 한겨레하니tv에 김어준의 KF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였다. 여기서 치킨은 박근혜를 말한다.

 

하지만 12화부터 프로그램 제목이 KFC본사 항의로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바뀌었다. 

 

2016년 9월 26일부터 TBS 교통방송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5년여 만에 지상파 라디오에 복귀했다

 

 

3. 김어준이 난 인간인 이유 셋! (그의 여유에서 나오는 해학)

 

김어준은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자유롭게 정권이나 정치인을 속된말로 까다보니 이런저런 보수나 극우 세력과 언론의

 

공격을 받거나 툭하면 소송을 당하기 일쑤인데도, 그가 이성을 잃고 광분하거나 주체없이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자유분방함으로 보면 흥분하고 화내고 다채로운 욕을 할것도 같은 상황에서도 신기하게도 해학으로

 

풀어내거나 차분히 지적인 분석을 내놓는 그를 보고 있자면 감탄이나고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일테면 김어준을 찾아 벙커 앞에서 시위중인 박사모 노인에게 그가 왜왔나고 묻고는 그를 몰라본 노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기도 김어준이나쁜놈이라 설득당할뻔 했다고 말하는 맨트같은 것이다.)

 

분노와 화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을 부르며 김어준이 말하는 비판과 비젼의 가치와 정당성을 회손 시킬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민간한 사안과 민감한 인물과의 대화에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해학과 웃음은 청취자에게

 

청량감을 준다.

 

개인적으로 그의 인기 비결중 최고 요인이라 본다.

 

 

4. 김어준이 힘을 잃을 수 있는 방법!! (음모론) 

 

김어준만의 독특한 개성과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능력을 한 순간에 없앨 수 있는 음모론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숫사자의 갈기 털을 밀어버린다고 생각해보자.

 

갈기가 없어지는 순간, 사자의 성정체성은 약화될것이다.

 

목을 보호하는 기능도 사라지므로 적에게 공격받을 시 위험해질 수도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것이다. 삼손이 데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리자 힘이 없어진 이야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자의 피를 타고난 김어준은 육식을 즐겨한다. 아침에도 고기를 먹는다. 그가 괜히 먹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주식이다.

 

 

 

그의 머리카락을 현재의 애인인 인정옥 작가나 시사인의 김은지 기자가 자를 수만 있다면,

 

다음날로 김어준은 버벅대는 언론인이 될지도 모른다.

 

김어준이 미워죽겠다는 정치인들은 믿져야 본전이니 빨리 이 두 여자분을 명품백으로 회유해보라!

 

믿거나! 말거나!

 

 

누가 사자의 갈기를 자를 것인가.?

 

아니면 김어준의 해학적 비판이 필요없는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게 빠를까?

 

아! 어느 세!

 

 

 대선 직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사드비용을 청구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하면서 대선 막판 변수로 어느정도

 

작용하였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탄핵과 구속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는 현안속에서 우

 

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미국의 정세나 프랑스 대선등 해외 주요 현안들에 대하여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한것

 

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 탄핵론까지 나올정도로 임기초반부터 낮은 지지율과 여러 외교문제에서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트

 

럼프 대통령에 대한 최근 이슈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인지 조금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임기를 시작한지 채 일년도 되지않아 야당에 의해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최근 상황을 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트럼프 탄핵론 대두

 

최근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캠프와 러시아의 커넥션 의혹 수사를 지휘하였던 FBI 코미 국장이 트럼프 당선 이후에도 지

 

속적으로 강력한 수사의지를 드러내다가 9일 전격으로 해임되면서 야당인 민주당에선 대통령이 FBI의 수사에 개입하려한다

 

며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FBI 국장은 임기가 10년으로 대부분,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를 보장받아왔던 관례로 볼 때,  트럼프가 코미국장의 수사진행에

 

대한 박으로 결국 국장을 해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백악관에서는 코미국장이 내부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무능하여 해임한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FBI 국장 대행이 이를 정면

 

으로 반박하면서 야당과 FBI 그리고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트럼프 대통령 탄핵가능성까지 제기하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

 

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코미국장을 감정적인 관심종자(관종)라 표현하고 전

 

날  있었던 백악관의 해명과 차이를 보여 오히려 논쟁이 커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한편,코미 전 국장은 오는 16일 상원 정보

 

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할 예정이어서 러시아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폭탄발언이 나올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의 행보

 

반이민 정책

 

기억하시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올 1, 3월에 반이민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당시 미국 이민자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외국 이민자나 방문객들이 공항에서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습니다. 다

 

행히 연방지방법원의 제동을 걸면서 효력이 정지되었습니다.

 

 

반이민 정책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이민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시리아라든지 이라크 이란이라든지 테러가 위험한 나라들의 국

 

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책입니다. 그리고 미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800만명이나 되는 불법 체류자도 추방되게 됩니다. 

 

 

*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슬림 테러위험 국가의 국민에게 비자발급 90일 중단

 

2. 테러 위험국가 출신 난민의 입국심사 대폭 강화

 

3. 난민 입국 프로그램 120일 동안 중단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반이민' 행정명령의 운명을 결정할 항소심 심리가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1차 행정명령에 이어 3월 발령한 2차 행정명령도 연방지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리자 항소를 제기했

 

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입장지만, 이에 반대하는 시

 

민단체는 '무슬림 입국금지' 조치라고 맞서고 있어 팽팽한 힘겨루기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CNN 등 미 언론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제4 연방항소법원이 미 법무부 측의 항소 이유와 변론을 청취하는 것을 시작

 

으로 항소심에 들어간다고 보도했습니다.

 

버지니아 항소법원은 이 사건을 15명의 판사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도록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 이라크와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와 난민의 입

 

국을 90일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행정명령은 연방지방법원과 항소법원에서 잇따라 저지돼 시행이 중단됐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3월 6일 입국금지 대상 7개국 가운데 이라크를 제외한 6개국 국적자에 한해, 기존 비자 발급자와 영

 

주권자에 대한 입국은 허용하고 신규 신청자에 대해서는 90일간 입국을 금지하는 내용의 2차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메릴랜드와 하와이 등의 연방지방법원은 효력 중단 판결을 내렸습니다.

 

시오도어 추앙 메릴랜드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2차 행정명령 발효일이던 3월 16일 판결에서 '미국시민자유연합'을 비롯한 시

 

민단체들이 이민자와 난민을 대리해 낸 효력 금지 소송을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메릴랜드 법원 판결이 재판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미 전역에서 효력을 갖게 돼 행정명령 시행이 좌초하자 미 법무부는

 

정식으로 항소했습니다.

 

 

 

 

보호 무역주의

 

보호무역주의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펼치는 무역정책입니다. 수입물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도 이

 

에 해당하며 제도적으로도 수입할당제 등 여러 수단이 존재합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트럼프가 주장한 경제 정책 '트럼프노믹스(Trump+ Economics)' 중 하나입니다. 미국 내 경제 활성화

 

에 초점을 맞춘 방안으로입니다.

 

*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1. 관세의 강화.(특히 중국발 관세에 대해 45%를 , 멕시코는 35% 주장)

 

2. 자국 내 자국산업에 대한 감세. 

3. FTA 재협상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사드 비용 청구와 맞물린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한미 FTA 재협상의 압박이 현실화

 

되고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멕시코 국경 장벽 추진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 불법이민자들을 막고 마약을 막겠다고 밝히며 장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에게 사드비용을 요구하듯 멕시코에 비용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일단 미국 예산으로 먼저 건설하는 것으로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는 중이다. 트럼프와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은 24개월 내 장벽 건설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해왔다 하지만 최

 

근 의회의 재정지원 보류와,잇따른 지주들의 소송제기로 24개월 내 건설 방침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NYT는 전망했

 

다.

 

오바마케어 폐지

 

트럼프는 공약인 오바마케어를 폐지를 하기 위한 공화당의 일명 ‘트럼프케어’(AHCA·미국건강보험법)가

지난 4일 연방하원을 통과후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어 연방 상원의 공화당이 트럼프케어의 일부 조항을

수정하는 자체 법안 마련에 나선다.

트럼프케어는 국민이 7년 동안 누려온 의료혜택의 일부나 전부를 박탈하게 돼 이로 인해 앞으로 10년간

메디케이드에서만 1,400만명, 전체 2,400만명이 의료보험을 잃게 될 것으로 예산분석 전문가들은 내다보

고 있다. 당장 첫 해에 1,400만명이 보험을 잃게 되고 노인들의 경우 더 높은 의료비를 내야 할 것으로 예

측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산업발전에 더 역점을 둔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문제가 주변국의 만류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파리기후협약 탈퇴 여부에 대한 결정을 이달 말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로 연기하기로했다.

 

* 트럼프는 어떤 인물인가.

 

1946년 미국 뉴욕에서 독일계 이민자 2세인 부동산 사업가 프레드 트럼프(Fred Trump)의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거칠고 반항적인 기질을 보였다.  1959년에 그는 군대식 기숙학교인 뉴욕군사학교에 입학하였다.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훠턴스쿨(Wharton School)에 편입하여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강제 징집되었으나 4차례 연기한 끝에 결국 발꿈치 질환으로 징집을 면제받았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면서 1971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회사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그

 

룹(The Trump Organization)'으로 변경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맨해튼의 값싼 호텔을 인수하여 그랜드하얏트호텔로 재건축하였고, 1983년에는 58층짜리 초고층 트럼프타

 

를 완공시켜 뉴욕의 랜드마크로 부각시키는 등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과 골프장을 건설하는 대규모 부동산 사업을 일으켜

 

부를 축적하였다.

1996년에는 미스 유니버스 조직회를 인수하여 미스 USA 대회와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2004년부터 NBC 방송

 

국에서 〈어프렌티스 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1977년 이바나 젤니

 

치코바(Ivana Zelníčková), 1993년 말라 메이플스(Marla Maples)에 이어 2005년에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모델 멜라니아 크나

 

브스(Melanija Knavs)와 세 번째 결혼을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소속된 정당이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1987년 공화당에 입당하였다가 1999년 개혁당으로 옮겨 2000년 제43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중도 하차하였다. 2001년에는 민주당으로 이적하였으며, 2009년에 공화당으로 복귀한

 

뒤 다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있다가 2012년에 공화당으로 재복귀하였다. 2015년 6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제4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하였고,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

 

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인종차별·성차별 등의 막말과 기행으로 기성 정치권과 언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지만, 이러한 악조건은

 

거센 비난을 부르는 동시에 지지율을 급상승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

 

이 열광하는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수완 좋은 사업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거래의 기술 The Art of the

 

Deal》(1987) 등의 저서가 있다.

* 트럼프는 상인의 기질을 가졌으며 철저히 자기이익에 충실한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드 비용을 청구하고 멕

시코에 장벽 비용을 청구하며 이후 비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모습과 최근 북한 김정은 발언도 그의 상업적 마

드가 배경이라 하겠습니다.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고 자기 이익에 적극적인 그의 가치관은 야당과 여당을 오가는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나 세번의 결혼과

, 그리고 딸 이방카등 가족과 지인들을 국정전반에 내세우고 그들의 기업이익을 가져가려는 행태에서도 어느정도 엿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런 자국실익을 최우선하는 트럼프 미국대통령과의 협상에서 어떻게 실익과 안보 두마리 토끼를 챙길

있을지 문재인 정부의 쉽지않은 시험무대가 될것 같습니다.

 


반(反) 미술로의 "미술 마르셀∼ 뒤샹"

 

1887∼1968

 

마르셀 뒤샹하면 여러분은 무었이 생각나시나요?

 

누가 뭐래도 변기가 생각나실 것 같습니다. ㅎ ㅎ

 

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금이어도 파격적이고 황당하게 받아들여질 출품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7년 뉴욕 전시회측도 당연히 뒤샹이란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것 같습니다. "샘"이란 이름으로 출품 된 이

 

작품은 그냥 일반 가게에서 살수 있는 그냥 소변기 였으니까요, 작가의 손길이 간 것은 소변기 한쪽에 "R, MUTT 1917" 이라

 

고 쓰여진 글자가 다였습니다. 

 

전시회측이 얼마나 당황하고 난감했는지 이 작품은 제대로 전시되지 못하고 전시기간 내내 칸막이 벽 뒷편에 사실상 방치되

 

어졌습니다.  전시가 거부, 아니 무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그냥 묻혀버릴 수 있었던 이 작품은 뒤샹과 그의 동료들이 "블라이드 맨"이라는 자신들의 잡지에 사진과 함께 자평을 기고함

 

으로써 비로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향은 시간이 갈수록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소변기는 일상의 평범한 기성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환경을 달리할 때 새로운 제목과 시각에 의해 오브제에 대한

 

로운 차원의 생각으로 창조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소변기에 대해 좀더 바라보면 편편한 부분을 바닥에 뉘어놓아서 마치 남성의 그것이 발기한듯한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써 있는 글자도 뒤샹은 소변기 제조회사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친것처럼 말했지만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듯 뒤샹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미술에 대한 인식에 반하는 작품들로 대중과 작가들조차 확고히 가지고 있

 

던 작품이라는 틀을 깨버리고 상상과 창조라에 있어서 소재와 방식의 폭을 대폭 확장시키는 인식의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생각납니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작품을 보며 우리는 사과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종이에 그려진 우리가 알고있는 전형적인 사과 이미지의 표

 

현일 뿐인 것이지요. 사실 이것은 종이에 불과하며 그리고 그 그림 속의 사물이 사과라고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 의미부

 

여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김춘수 꽃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어지며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입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하던 그가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듯이 어떤 존재의 의미는 어

 

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막상 우리가 소변기를 전시회에서 마주쳤을 때 "이게 뭐

 

야?"

 

"이게 작품이야?" "나도 작가하겠네!" ㅎㅎ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익숙한 미술작품은 화폭에 이런 저런 재

 

료로 그려진 작품이니까요...

 

뒤샹이 위대한 작가인 것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창작과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에서 에너지를 갖는다

 

는 본질을 다시한번 소변기지만 소변기 일 수 없는 기성품으로 사람들에게 일깨워 줬고, 그의 상상력은 소변기조차 "샘"이라

 

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자유로운 예술가 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뒤샹하면 떠오르는 단어들과 작품"샘"을 제외한 유명작품 몇가지를 감상하시면서 오늘 포스팅을 마칠까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남들이 이것이라해도 당신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겐 무의미거나 전혀 다른 의미

 

일겁니다.  뒤샹의 작품들을 보면서 한번씩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들을 확장해보고 다른 시각으로 바로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

 

습니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기도 한 것 같으니까요....

 

 

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뒤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달리, 초현실을 그리다.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 1989년 1월 23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20세기, 위대한 화가들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의 그림을 보면 바로 이야기할 정도로 세계적인 화가인데요.

 

한번 보면 그 특이함이 강하게 기억속에 남아 누구라도 달리를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그가 그린 그림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린것으로 사람들

 

게 충격과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하며 그만의 공간에 장난기를 심어 넣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럼 초현실주의가 뭘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를 말합니다.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담은 사진 16장

 

달리의 그림이 얼마나 독특한지 겉보기엔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으로 평론가를 당황시기 일쑤였으며 , 데모크리스

 

토스는 보물찾기를하듯 확대경이 있어야만 달리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을 찾아 낼 수 있다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달리는 스페인 피게라스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달리는 냐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가문에서 태어났는데요,

 

가문은 사상적으로 자유로왔으며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띤 반교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달리의 아버지

 

는 달리를 종교색이 없는 공립초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이때부터 달리의 과대망상의 씨가 뿌려진 결정적 시기라고 할 수 있습

 

니다.

 

 

 

 

16세에 " 나는 천재다. 세상이 나를 우러러 보리라!"라고 일기장에 썼던 달리 . 천재가 누구보다 먼저 천재인 자신을 알아보았

 

네요 그것도 십대에 ㅎ ㅎ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모음

 

이 후  달리는 마드리드에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루이스 부뉴엘을 만나게 됩니다.

 

Little Ashes- 살바도르 달리,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루이스 부뉴엘.

 

두 사람은 달리에게 미학적 눈을 키워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도 호평과 비난 사이를 오고가며  삶의 모든 것에서 장르를 파괴하며 혼돈을 체계화하

 

자 애썻습니다.

 

달리는 회화는 물론 영화, 오브제, 건축, 설치미술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많은 예술적 흐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자서전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

 

 

 안달루시아의 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초현실주의surrealism작가들(살바도르 달리,메레트 오펜하임,알베르토 자코메티) - 조각편

 

달리가 바라본 시선은 강렬한 초현실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의미는 보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건 달리의 그림은 편하고 분명하게 바라볼 수 없는 그림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림을 보며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달리 그림의 매력이 개인적으론 여기에 있다.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달리의 그림을 해석하고 계신가요?

 

 

에드바르드 뭉크

 

1863년 ∼ 1944년

 

"내가 그리는 선과 색은 모두 내면의 눈으로 본 것이다.

 

기억에 의존하고, 다른 것을 더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부는 그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내 그림은 매우 단순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잊혀진 날들을 떠올리는 나른한 색채는 유년시절의 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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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노르웨이의 화가다.

 

뭉크는 누이 셋과 남동생이 한명있었다.

 

어린시절 다섯 살에 어머니를 결핵으로 여의였고 , 한 살 위의 누나 소피 역시 결핵으로 열다섯 살에 사망하였다. 이 일

 

은 청소년기 뭉크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1895년엔 남동생이 사망했고 1889년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훗날 뭉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불안과 질병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방향타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뭉크의 예술적 기질에 중대한 역할은 한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건강과 존속 여부에 대한 불안이었던 것이다.

 

뭉크 생애의 작품은 무척이나 광범위 하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이야기 해본다면 인간 존재의 갖가지 면모를 담고자 했고 , 많

 

은 작품속에 불안의 심리를 담았다.

 

뭉크는 노르웨이 오스고르스트란을 인생 중심 무대로 삶아 삶, 사랑, 죽음에 관한 시를 표현한 작품들을 그리게 된

 

다.

 

뭉크의 많은 작품에는 어두운 색채나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불안감이 진하게 느껴진다.

 

뭉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뭉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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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대표작은 대중들이 가장 많이 알고있듯 바로 "절규"라는 작품인데 이 절규는 뭉크가 니스에서 병을 앓고 있을

 

때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 바라본 해질 녁의 모습에서 자신의 불안감을 투영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체험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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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가족들의 죽음을 보며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불안감을 회피하기보단 그의 작품속에 담아내었다.

 

뭉크는 가족들과 달리 여든 한살의 나이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재산을 모두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크는 지금도 현대인들에게 당신의 불안은 무었 때문이냐?  묻고 있는 듯하다.

 

 

 

 

키스 해링

 

 

1958년__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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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를 몇마디 말로 어찌 정의 할 수 있을까...

 

오늘 그의 케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가는 사람을 보았다.

 

사실 그의 케릭터가 얼마나 많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있나...

 

그냥 키스 해링이라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단상들을 적어본다.

 

 

" 나는 그리는 능력으로 세상에 이바지한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

 

가능한 한 많이 그릴 것이다. "

 

 

 

키스해링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그는 거대한 드로잉 작품과 회화 작품, 벽화와 조각 작품들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티셔츠와 포스터를

 

남겼다.

 

그는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명성을 얻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미국 작가였다..

 

그의 작품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을 궂이 단 한줄로 말하라면  바로 선이다.

 

그의 작품이 가지는 특별한 매력은  강렬한 그래픽 양식을 거대한 상상의 세계와 결합한 작가의 능력이다.

 

수천명 아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해링의 티셔츠를 입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작가의 양식적 특징을 인지했다..

 

지금도 키스해링의 작품은 티셔츠로, 각종 패션아이탬에 상업적으로 사용되며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그의 작품의 특징이 각인되어있다..

 

그는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가공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해링의 작품은 엄청나게 많지만 일반 대중들은 빛나는 후광속에 기는 아기와 또는 사람, 주둥이가 모난 개가 짓고 있는 그림으로 양식화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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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링은 앤디워홀과 함께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평가받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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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시관만이 아니라 도시 어느 공간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태그하여 대중에게 강렬하게 다가섰다.

 

해링의 작품을 명랑하고 활기차며 낙천적이다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해링은 누구보다 당시 미국의 사회, 정치적 문제를 자신의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녹여낸다.

 

성에 대해 많은 고민과 사유를 작품속에 담아낸 해링이 에이즈로 요절한 것은 어찌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무자비한 현실과 성에대한 중압감 죽음 폭력등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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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링을 잘 모르고 단순히 티셔츠 속 개와 아기 그림에 익숙한 현대의 일반 대중이 적나라한 성기묘사와 난잡하고 기괴한 그래픽을 본다면 어떤 충격을 받

 

게될까 .... 그리고 해링의 예술 세계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해링은 에이즈로 죽기 이년전 1988년에 감염 사실을 알게되고 마지막 이년동안 희망과 절망사이를 오가며 그 정신의 세계를, 작품속에 그려내며 오히려

 

예술 에너지를 강화시킨다.

 

고뇌가 없고, 정신속에 싸움이 없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어쩌면 예술작품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자아 또는 사회에서 강요되는 이념과 반항하고 싸우며 흘리는 혈흔 일지도 모르겠다.

 

해링의 외소한 몸과 순한 얼굴이 달리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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